아들이 결혼을 했다. 당일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결혼식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개었다. 거리는 마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물청소를 한 듯 말끔했다. 하객들에게 불편함을 주지는 않겠구나 싶어 다행스러웠다. 결혼은 당사자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혼주들도 아침 일찍 식장에 도착해 메이크업을 하고 올림머리를 했다. 3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으려니 오른쪽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식이 진행되기 30분 전부터 하객들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일가친척들과 친구와 지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
탄천에 나갔더니 하천 위에 세워진 대부분의 나무다리가 끊어져 있었다. 작년에 설치를 시작해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다리인데 이번 폭우가 생각보다 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무 밑단마다 풀과 쓰레기가 걸려 있는가 하면 아예 부러지거나 쓰러진 나무도 많았다. 산책로의 아스팔트는 덩어리로 뜯어져 나가 떡판처럼 널브러져 있었고, 하천 양옆에 쌓았던 시멘트 블록들은 떠내려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심지어는 나무벤치와 난간과 자전거 등도 설치 장소를 떠나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이 동네에서 몇십 년을 살았지만 이렇게 심한 수해 피해는
얼마 전 TV에서 거북이에 관한 놀라운 뉴스를 들었다. 미국 플로리다 키스제도의 해변에서 부화한 바다거북이 모두 암컷이었다는 내용이었다. 호주에서도 바다거북의 99%가 암컷이라는 통계를 내놓았다고 덧붙였다. 이런 해괴한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놀랍게도 기후변화 때문이었다. 바다거북은 알이 부화될 때 온도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고 한다. 동물이 수정할 때 성별이 결정되는 것과는 다른 특징이다. 바다거북은 모래에 알을 낳는다. 이때 알이 묻혀 있는 모래의 온도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 모래의 온도가 섭씨 29.7도보다 높으면 암컷,
연꽃은 여름꽃이다. 수많은 꽃이 여름에 피지만 연꽃이 차지한 왕좌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모란은 대표적인 봄꽃이다. 모란은 꽃 중의 꽃이라는 의미에서 ‘화왕(花王)’이라 부른다. 화왕은 피어 있는 기간이 짧다. 피었다 싶으면 뚝뚝 떨어진다. 김영랑이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라고 탄식했던 이유도 모란의 짧은 개화기간 때문이다. 김영랑의 아쉬움은 연꽃 앞에서라면 쉽게 그칠 것이다. 연꽃은 7월부터 10월까지 끝없이 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수많은 여름꽃 중에서도 굳이 연꽃을 보러 길을 떠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나의
예전에는 “기개가 있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씩씩한 기상과 꿋꿋한 절개가 있다는 뜻이다. 기개가 있는 사람은 삶 앞에서 당당하다. 자신이 정한 원칙에 따라 살기 때문이다. 불의를 행하거나 소견 좁은 행위를 도모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에는 기개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어디로 도망갔는지 찾아내기도 어렵다. 기개가 사라지고 나니 사는 데 지친 사람들은 그저 오늘 하루 잘 버티고 무사히 넘겼다는 생각만으로 다행이라고 여긴다. 기개가 없는 세상은 버겁고 힘겨운 일만 가득한 것처럼 느껴진다. 집 나간 기개를 찾아 나설 때가 된 것
대학교 다닐 때였다. 중남미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었다. 이름도 생소한 그의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그해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40여년도 더 지난 일이라 소설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책에 들어 있던 작가의 흑백사진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작가가 오른손을 머리에 대고 폭이 좁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의자 밑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신발이 보였다. 글이 잘 안 풀린 듯 작가는 타자기를 앞에 두고 앉아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온전히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집 크기를 삼분의 일로 줄여서 가기 때문에 짐도 그만큼 줄여야 한다. 어떤 물건을 남기고 버려야 할지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우선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은 제외하고 나머지는 버리기로 했다. 그 나머지를 선택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소유한 물건은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그 흔적들을 살펴보니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물건이 책과 꽃나무였다. 둘 다 가져갈 수는 없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꽃나무를 버리기로 했다. 이사 갈 집이 좁은
TV를 켜니 라면에 관한 방송이 나왔다. 신메뉴가 출시된 줄 알고 채널을 돌리려는데 그다음 말이 의외였다. 개 사료용 라면이었다. ‘개가 라면을 먹는다고?’ 가격도 사람이 먹는 라면보다 세 배가 비쌌다. 그런데도 불티나게 팔린단다. 없어서 못 팔 지경이란다. 개가 사람보다 비싼 음식을 먹으니 그야말로 요즘은 ‘개팔자가 상팔자’다.반려동물 1500만 시대가 되었다. 10가구 중 3가구는 반려동물을 기른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거나 유모차에 ‘모시고’ 산책시키는 광경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번은 산책길에서 개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할
진짜 사람인가? 가짜인가? 버추얼휴먼(가상인간) 한유아의 뮤비를 보면서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몇 해 전부터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가 등장하더니 그곳은 어느새 가상인간들의 활동무대로 바뀌었다. 한유아, 이솔, 로지, 김래아, 리아 등의 가상인간들은 메타버스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인기스타다. 이들은 넓디넓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물리적 제약을 받지 않고 무한대로 유영하며 활동한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인간인데도 실제 사람과 똑같이 노래하고 춤춘다.물론 사람과 다른 것도 있다. 사람이라면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반드시
해마다 아카시아꽃이 지면 꿀을 주문한다. 피곤하거나 달달한 것이 당길 때 꿀을 한 숟가락 푹 퍼서 입에 넣으면 기분이 갑자기 확 살아난다. 초콜릿이나 설탕이 대체할 수 없는 달콤한 맛이 바로 꿀맛이다. 그런데 올해는 꿀값이 많이 올랐다. 지난 겨울에 약 80억마리의 꿀벌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소식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80억마리는 전국 벌통의 15.1%에 해당하는 숫자다. 문제는 꿀벌의 죽음이 단순히 꿀값을 올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꿀벌의 죽음은 인류의 식량난으로 연결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꿀벌은
칸국제영화제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고,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게임’(2021)이 세계인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하더니 두 사람의 수상 소식이 그 뒤를 이었다. 바야흐로 한국 영화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이제 한국 영화는 세계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에 서서 영화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더불어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백악관을 방문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방문 목적은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방탄소년단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갔다. 요즘처럼 영상문화가 발달한 시대에 줌으로도 대화가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방한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것이 우호를 다지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보여주기도 중요하다. 중요한 두 정상의 만남이지만 모든 진행과정이 매끄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불미스러운 일도 발생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미리 입국한 미국인이 만취해 내국인을 폭행한 사건이었다.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도대체 기강이 얼마나 해이해졌으면 그